낮 동안은 아직 30도를 웃돌고 있지만,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을 타고,
매미 소리는 점차 사라지고,
귀뚜라미 울음 소리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그렇게 기다리던 가을이 노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름 정해진 길을 따라
세월은 오고 가고 있지만,
나의 마음은 뒤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8월의 마지막 날에,
과연 나는 가을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까.
지은 죄에 비해 사함을 받은 죄가 너무 적어서
부끄럽고 부끄러워서
차마 가을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순결한 가을 속으로 걸어들어 갈 수가 없구나.
불볕더위를 뚫고,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수원으로 간다.
홋카이도의 날씨가 그리울 정도이다.
9월 중순 너머 홋카이도는
어떤 모습으로 날 맞이할까.
십 수년만에 찾는 해외에행지인데,
지금 당장은 신명이 나지 않아서
화가 난다.
마음비움, 마음챙김이 이렇게 어렵다니!
토요일이어서 잠시 아들이 있는 인천으로 가고도 싶었지만,
그냥 8번 출구를 나와 순대골목의 단골식당 <아다미>를 찾기로 했다.
8월 한 달 동안 열대야 속에서
불거질대로 불거진 불면증과 우울증을
점심겸 저녁삼아 순대국에
참이슬 한 병으로 떠나 보내야지.
어쨋든 내일은 9월의 첫 날이고 가을의 시작이니까.
참이슬 대신 100년 기념출시된 진로소주 한 벙에 취해
수원역 로데오거리를 배회하다가,
생전 처음으로 DVD영화관에서 그렇게 오래 찾았던 영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 레터>를 보았다.
드라마 <하얀 연인>과 함께
삿포로 인근의 소도시, 눈의 고장인 오타루에서 촬영했다는데,
이번 삿포로 여행길에서는 그 곳을 들를 수가 없을 것이다.
영화관에서 내려와 밤의 로데오거리를 걷다가.
세계과자할인점에서 두 손녀딸에게 줄
일본 과자를 잔뜩 구했다.
어차피 일본에 가면 만나게 될 터이지만,
미리 아메 사탕의 맛을 체험하는 것도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