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기도
-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눈물
- 김현승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들이라 하올제,
나의 가장 나아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플라타너스
- 김현승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곳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올제, 홀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영혼을 불어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이 아니다.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 김현승 시인의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좋은 시를
여기에 차마 싣지 못 했다.
오늘은 새로운 날의 시작이다.
<사천에서 1>, <사천에서 2> 등의 시리즈는 쓸 수 없게 되었다.
<사천 가는 길>도 마찬가지다.
사천시의 문화 관광 홍보에 도움이 될 수 있었는데, 안타깝다.
그러나 다 인연따라 사는 길,
그럴만하니까 그런 것이고,
나는 내게 주어진 길을 가면 그뿐,
오늘의 가을날을 충실하게 튼실하게 살아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