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 야채 샐러드를 만들던 아내가 손가락을 베어 고생하다가,
오늘 아침에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어젠 휴일이어서 가까이 사는 아들 내외와 큰 손녀가 놀라서 찾아와,
전복죽을 쑤어놓기도 했으니,
그 옆에서 나는 홍어회에 막걸리를 마셨다.
오늘도 나는 길을 걷지 못하고,
영월 망경대산 중턱에서 자급자족적인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유승도 시인의 산문집, <산에 사는 사람은 산이 되고>를 완독했다.
언젠가 영월 무릉도원면의 사자산 법흥사에서 3박 4일간의 템플스테이를 하러 가는 길에,
김삿갓면의 산꼬라데이길을 잠시 걷기도 했다.
또 운탄고도 모운동길을 걷기도 했고,
한반도면의 한반도지형을 세차례는 탐방했고,
재작년엔 인천의 아들가족과 산상의 캠핑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다.
영월이나 정선 쯤의 산길도 좋아하지만, 민둥산 억새밭이나 아우라지 길 만큼이나 바닷가 길도 좋아한다.
동해안의 해파랑길, 남해안의 남파랑길, 서해안의 서해랑길을 걷다 보면,
내가 혹여 자연인으로 산다면,
나이가 있으니, 산 보다는 바다가 어울릴 거라는 뜬금없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내일은 산이 되었든, 바다가 되었든
일단 길걷기 출사표를 던지게 될 터인데,
아무래도 산과 바다를 낀 섬이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사흘만에 행차하는 것이니,
조금은 설레는 마음 안고 길을 나설 것같다.
그러나, 손 크고 통 큰 아내로 인해
저녁밥상에 떡하니 오른 것은,
거의 4인분 수준의 닭도리탕 (600g 팩 두 개)이었으니, (절반은 내일 아침 길 떠날 때, 소화시키기로 했다.)
아내의 코치를 받아 내가 요리했음에도
맛이 기막히긴 했지만,
생각치도 못한 술을 마시기도 했다.
언젠가 제주도 여행길에 아들이 선물한
'글렌피딕(Glenfiddich) 12년 쉐리'를 마저 병나팔을 불었다는 것.
향기로운 술에 기름진 닭도리탕으로 어제 아내가 손가락 베임에 따른 피는 다소라도 보충이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