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의 물향기수목원에서 설경 사진을 찍다가,
물방울온실로 다시 들어왔다.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雪國)>을 읽은 때가 언제던가.
다사이 오사무의 <사양(斜陽)>을 읽던 젊은 날이 생각난다.
지상에서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죽음이 있다면!
물향기수목원에 와서,
한창 일본 소설에 빠져 지내던 젊은 날이 생각나는 것은...
방금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드디어 안성에도 눈이 엄청 많이 내린다는 것인데,
내일쯤 절임배추가 택배로 도착할 텐데,
김장용 무우와 쪽파를 사오라는 것.
아내가 안성에서라도 들길로 나가
눈밭을 걸으면 좋겠는데,
십중팔구 집의 거실에서 TV를 상대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이 눈이 사실상 첫눈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설경(雪景) 속으로 나가서
아까 만났던 단풍길의 눈을 뒤집어쓴 단풍나무를 만나리라.
아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을 연출할 것이니까.
그사이 시간이 흘러서 설경의 모습도 조금은 달라져 있겠지만,
그 설경을 바라보는 내 자신도
그 사이 조금은 변해 있을 테니까.
다시 찾아간 단풍나무길에서
다시 눈과 어울린 단풍 풍경 사진을 찍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오산대역으로 나왔다.
현재시간 오전 11:45, 점심시간은 가까워오는데,
마침 배도 고프고 하여
큰맘먹고 수원역 8번 출구로 가서
<아다미 순대국>에서 명품 순대국밥을 먹기로 했다.
오늘은 멋진 설경 속의 단풍사진을 많이 찍었으니까 나름 기념을 해야지!
수원역 가는 전철 안에서
독특힌 으름나무 지팡이를 지닌 스님을 만났는데,
26년을 사용하셨단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지팡이일거라고 했더니,
나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람일거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인가.
수원에도 많은 눈이 내리고 있었고,
여전히 <아다미>는 만원이었고,
애기보가 들어간 순대국밥(9,000원)은
소주가 빠져서 조금 서운했지만,
이젠 제발 소주 없는 음식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젠 아내가 부탁한 무우랑 쪽파를 짊어지고
집으로 갈 힘이 생겼다.
스님의 지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