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야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초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두런두런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영동 가는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로
옥천을 지나며,
문득 생각나는 정지용 시인의 <향수>라는 시이다.
예전 두 번씩이나 찾았던 옥천,
한 번은 아내와 함께 시인 정지용 생가와
육영수 여사의 생가를 돌아보고,
실개천을 따라 대청호까지 걸었던 추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