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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즐거움 6

걷기 여행자 2024. 10. 24. 04:39



      사랑하는 까닭
                     -  한용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아득한 성자
                - 조오현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내가 죽어 보는 날
                         - 조오현

부음을 받는 날은
내가 죽어보는 날이다.

널 하나 짜서 그 속에 들어가 눈을 감고 죽은 이를
잠시 생각하다가
이날 평생 걸어왔던 그 길을
돌아보고 그 길에서 만났던 그 많은 사람
그 길에서 헤어졌던 그 많은 사람
나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
나에게 꽃을 던지는 사람
아직도 나를 따라다니는 사람
아직도 내 마음을 붙잡고 있는 사람
그 많은 얼굴들을 바라보다가

화장장 아궁이와 푸른 연기
뼛가루도 뿌려본다



      사랑법
               - 강 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있는 누워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그 꽃
                - 고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풀꽃
            -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행복
            - 나태주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때
마음 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때
혼자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