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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즐거움 5

걷기 여행자 2024. 10. 23. 15:59



            갈대
                 -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거문도
                      -김춘추

처어얼썩
처어얼썩
뺨을 치면서

큰 선비 둘이 동과 서에서
졸지 않고 밤낮으로 글을 읽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  최두석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무슨 꽃인들 어떠리
그 꽃이 뿜어내는 빛깔과 향내에 취해
절로 웃음짓거나
저절로 노래하게 된다면

사람들 사이에 나비가 날 때
무슨 나비인들 어떠리
그 나비 춤추며 넘놀며 꿀을 빨 때
가슴에 맺힌 응어리
저절로 풀리게 된다면.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 오규원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 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만의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 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



           가을 산
                    -박하영

갈바람이
푸른 산자락 넘어가다
빨강물감 질퍽 엎질러 불었다

갈바람이
또 산모퉁이 돌아가다
노랑물감 흠씬 엎질러 불었다

이제 푸른 산은
빨강 노랑 물감 어우러져
온통 오색 빛

갈바람 아니면
누가 저리 이쁘게
푸르기만 하던 산을
깜쪽같이 물들여 불었노

         - 시집 <직박구리 연주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