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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즐거움 4

걷기 여행자 2024. 10. 23. 15:03


  
          목계장터
                      - 신경림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햊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가을
                     - 함민복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흔들바위
                        - 권정남

사방 나무들 벽에 갇힌 채
가부좌를 틀고 있다

스쳐가는 눈빛
산위까지 올라온 왁자한 세상 소문이
전류로 와 닿으면 불덩이로 흔들렸다
설악산 바람이 귀때기를 때리고
단두날 번개가 죽비되어
어깨를 내리쳐도
뜬눈 허공을 면벽하고 있었다

흔들리면서 흔드리지 않는
눈부신 화두

까칠한 얼굴 드문드문 버짐 꽃 피우며
정과 동, 깨달음의 절정에서
밤이면 달 뜬 몸에 창창한 별을 박고
니르바다 꽃 한 송이 피우려고
캄캄한 몸에 부싯돌 그어대는
벼랑 끝 시다르타

수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