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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즐거움 3

걷기 여행자 2024. 10. 21. 04:29


      국화 옆에서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춘향유문
                       서정주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던 날
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있던
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이 사랑보다 오히려 더 먼
먼 나라는 아닐 것입니다

천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에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되어 퍼부울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에요!


*부안 변산 마실길을 다 걷고,
고창으로 가서 질마재길을 두루 걸었던 때,
미당 서정주 시인의 생가 가는 길에도 노오란 국화꽃이 가득 피었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