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옆에서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춘향유문
서정주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던 날
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있던
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이 사랑보다 오히려 더 먼
먼 나라는 아닐 것입니다
천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에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되어 퍼부울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에요!
*부안 변산 마실길을 다 걷고,
고창으로 가서 질마재길을 두루 걸었던 때,
미당 서정주 시인의 생가 가는 길에도 노오란 국화꽃이 가득 피었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