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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즐거움 2

걷기 여행자 2024. 10. 21. 03:49



       선운사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건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항해일지 28
     _ 한려수도 물길에 사량도가 있더라
      
                          김종해

사량도 눈썹 밑에 노오란 평지꽃이
눈물처럼 맺힌 봄날
나도 섬 하나로 떠서
외로운 물새 같은 것이나
품어 주고 있어라
부산에서 삼천포 물길을 타고
봄날 한려수도 물길을 가며
사랑하는 이여
저간의 내 섬 안에 쌓였던 슬픔을
오늘은 물새들이 날고 있는
근해에 내다 버리나니
우는 물새의 눈물로
사량도를 바라보며
절벽 끝의 석란으로 매달리나니
사랑하는 이여
오늘은 내 섬의 평지꽃으로 내려오시든지
내 절벽 끄트머리
한 잎 난꽃을 더 달아주시든지


* 삼천포에서 사량도로 건너가서 하룻밤을 자고,
사량도 지리산을 종주했던 때에,
힘든 산행길에 좌우로 펼쳐지는 바다는 어찌나 가슴 시리도록 푸르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