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가래비의 아버지 산소에 성묘 가는 날,
인천의 아들과 안양 명학에서 만나
아들의 승용차로 함께 가기로. 하고,
아내와 첫차로 평택역으로 나간다.
의정부와 포천 송우리에 살 때에야
자주 찾아 뵐 수 있었지만,
그후 속초 목포 안성으로 떠돌다 보니,
쉽게 발길이 닿지 않아서,
서울 동작 현충원 뒤, 서달산 달마사 봉안당에 모신 어머니와의 합장이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장에 대한 형제간의 의견이 분분하여 난감하다.
부모님을 모시고 의정부 금오동에 살 때에
천보산에 자주 올라 포천의료원 방향으로 종주산행을 했고,
앙주 불곡산에도 자주 갔더랬다.
그 시절엔 산에서 펄펄 날아 다녔는데,
세월이 흘려 다리 통증이나 호소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 돌아가신 30년 전,
1994년에도 엄청 더웠지.
그 해 여름엔 깨나다 캘거리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었는데,
김일성 사망 소식도 전해졌었다.
이 세상에 왔다가, 한번은 가야할 먼 길,
우리는 나중에 나중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될까.